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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단종문화제
작성자
이광순
등록일
2006-04-07
조회수
1181
내용
행사기간 : 2006.4.5(수)~4.9(일)
행사장소 : 장릉,동강둔치,문화예술회관 등(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단종제 관련 세부내용(함 읽어 보셔욤 ㅋ)
최영?남이?임경업 등 한(恨)을 품고 죽은 사람들이 신령으로 모셔지듯 단종도 죽어서 태백산신(太白山神)이 되었다.
특히 단종은 영월의 청령포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사약을 받고 승하하셔서 인근에는 그에 대한 구전설화가 많고, 또 신격화되어 신으로 모신곳이 많다.
태백시 소도동 11반에는 ‘쇠길제당’이라는 사당이 있는데 이곳에는 어린 단종상(端宗像)을 모셔 놓고 매년 4월 15일에 마을 주민들이 모여 제사를 드린다.
이는 단종이 태백산 산신령이 되어 백마를 타고 오실 때 이곳에서 쉬어 갔다는 전설에 연유한 것 이며, 여기에서는 여신도를 궁녀, 남신도를 충신이라 부른다.
또 영월군 상동읍 구래리에 어평(御坪)이라는 곳이 있는데, 단종 혼령이 산신령이 되어 태백산으로 가실 때 쉬어간 곳이라 하여 모실 어자(御字)와 벌판평자(坪字)를 붙여된 지명이다.
이 마을에는 단종의 영각(影閣)이 있어서 해마다 정월대보름에 주민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는데, 반드시 검정색 돼지를 잡아 제수로 쓴다고 한다.
단종을 서낭신으로 모시기 위한 곳으로서 유명한 서낭당은 영월군 중동면 녹전리와 정선군 북면 여량리의 당(堂)이다.
또 영월의 대표적 서낭당이었던 영모전은 이곳 주민들이 단종의 영정을 모시고 성역화하였다.
단종은 열두살에 임금의 자리에 올랐다가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숙부인 세조에 의해 ?겨났다.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이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고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되어 열일곱 나이에 꽃다운 삶을 마감했다.
이에 영월 군민들은 매년 4월 한식(寒食, 4월5~6일경)날에 단종의 외로운 혼과 충신들의 넋을 기리는 단종문화제를 봉행한다.
조선 제6대 왕인 단종(端宗)이 1452년 12세의 어린 나이로 문종(文宗)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왕위에 오른지 3년만에 수양대군(首陽大君)에게 밀려 강제로 선위(禪位)하고 이듬해 15세의 나이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降封)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다.
그 해 초가을 홍수로 서강(西江)이 범람(汎濫)하여 영월읍내 관풍헌(觀風軒)으로 처소(處所)를 옮겨 기거하고 있던 중 금성대군(錦城大君)이 일으킨 노산군(魯山君)의 복위계획이 또 탄로되자 세조는 금부도사 왕방연(王邦衍)을 시켜 단종에게 사약(賜藥)을 내리게 하였다.
1457년 10월 24일 사약을 가지고 온 왕방연이 감히 사약을 진어하지 못하고 오열하고 있을 때 단종을 모시던 공생(貢生 향교의 심부름꾼)이 활시위로 목을 졸라 17세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이때 갑자기 먹구름이 모여 들더니 강풍이 몰아치면서 뇌성벽력이 진동하다가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반역 죄인을 죽인 나의 공(功)을 알아달라”고 외치면서 뜰앞을 걸어가던 공생은 눈과 코, 입으로 피를 토하고 즉사했다고 전하며, 노산군을 모시던 시녀들이 동강(東江)에 몸을 던져 순절하니 후세 사람들이 이곳을 낙화암이라 한다.
노산군이 변을 당한 후 충신 추익한(秋益漢)이 노산군을 뵈려고 산머루를 가지고 관풍헌(觀風軒)을 향해 가던 중 곤룡포에 익선관으로 정장을 하고 백마를 탄 노산군의 모습을 보고 “어디로 가십니까”하고 물으니 “나는 태백산으로 간다”고 하면서 홀연히 사라지셨다고 하여 후세 사람들은 단종대왕이 태백산의 산신령이 되었다고 믿고 해마다 태백산신제를 지낸다.
노산군이 승하한후 그가 역적으로 몰려 사약을 받았기 때문에 노산군의 시신을 거두려는 사람이 없었고 또 거두려고 해도 관(官)의 눈이 두려워 감히 용기를 낼 수 없는 지경이었다.
노산군의 시신은 나졸들에 의하여 동강(東江)물에 던져졌는데 이때 엄흥도라는 사람은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군수(郡守)를 찾아가 장사를 지내자고 하였으나 군수는 묵묵부답이었다.
이에 호장(戶長) 엄흥도(嚴興道는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 것은 내가 달게 받겠다”고 하면서 시신을 찾아 헤매다가 동, 서강(東?西江)이 합치는 합수머리에서 시신을 찾아 내고 둘째 아들 광순(光舜)을 데리고 자신의 어머니를 위하여 준비해 두었던 수의와 관으로 염습을 하여 영월 엄씨(寧越 嚴氏)의 선산인 동을 지산(冬乙支山)에 몰래 암장(暗葬)하였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누구도 이 사실을 몰랐었는데 그 후 중종 11년 1516년 노산묘(魯山墓)를 찾으라는 왕명이 내렸고, 선조 13년(1580년)에는 어명으로 노산묘(魯山墓)를 수축하고 상석(床石)표석(標石)향좌아(香座兒) 장명등(長明燈) 망주석(望柱石)등을 만들어 세우고 능전사청(陵典祀廳)을 건립하였다.
단종릉(端宗陵)에 대한 제향(祭享)은 중종 11년(1516년) 우승지(右承旨) 신상(申常)이 진향(進香)한 이래 계속되었으며 영월군에서는 단종제(端宗祭)행사를 만들어 단종을 비롯한 총신들의 넋을 위로하는 제향은 물론 각종 민속문화행사를 진행함으로써 단종제는 영월군을 대표하는 종합예술마당으로 자리잡고 있다.
단종제는 1967년도에 처음 만들어져 37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영월의 대표적인 문화행사이다.
행사는 단종(端宗)의 고혼과 충신(忠臣)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충신봉화, 향화봉송, 낙화제, 고유제(告由祭) 등과 체육행사 및 가장행렬, 충신선발, 한시공모전, 글짓기대회, 미술대회, 전시회 등의 문화예술행사 그리고 궁도, 윷놀이, 그네뛰기, 널뛰기, 장기, 농악경연, 옛소리 경창대회 등의 각종 민속행사가 진행되는 영월군민의 종합예술제이다.
(1)단종약사(端宗略史)
◈ 탄강(誕降) : 제송 23년 신유(1441년 7월 23일) 자선당 ----1세
◈ 왕세손(王世孫) : 세종 30년 무진(1448년 4월 3일)--------8세
◈ 왕세자(王世子) : 문종 즉위년 경오(1450년 7월 20일)------10세
◈ 즉위(卽位) : 문종 2년 임신(1452년 5월 18일) -----------12세
◈ 왕비책봉(王妃冊封) : 단종 2년 갑술(1454년 1월 22일)려산송씨 --14세
◈ 선위(禪位) : 단종 3년 올해(1455년 윤(윤)6월 11일) ---------15세
◈ 상왕위(上王位) : 세조 1년 을해(1455년 7월)공의온문상태왕---(恭懿溫文上太王)15세
◈ 유배(流配) : 세조 2년 병자(1456년 6월 22일)노산군(魯山君)으로----강봉(降封)16세
◈ 승하(昇遐) : 세조 3년 정축(1457년 10월 24일)관풍헌(觀風軒)----17세
◈ 대군추봉(大君追封) : 숙종 7년 신유(1681년)승하후 224년
◈ 왕위복원(王位復元) : 숙종 24년 무인(1698년) 묘호 단종(廟號 端宗) 능호 장릉(陵號 莊陵) 승하후 241년
(2) 단종제향(端宗祭享)의 유래 단종제에서는 단종에 대한 제향 뿐만 아니라 단종과 관련된 충신에게도 제향한다.
충신단은 조선조 제22대 왕인 정도 15년(1781년)에 어명으로 건립된 장릉경내에 있는 충신각에 충신들의 위패를 봉안한 곳으로 이는 충신위(忠臣位) 조사위(朝士位), 환관위(宦官位), 여신위(女人位)등 4단으로 구분되어 있다.
충신위(忠臣位)는 안평대군(安平大君), 금성대군(錦城大君), 화의군(和議君), 한남군(漢南君), 영풍군(永豊君)을 비롯하여 중추원부사 이양(李穰), 예조판서 권자신(權自愼), 병조판서 및 팔도도진무(八道都鎭撫) 정효전(鄭孝全). 의정부영양위 정종(鄭琮), 영돈령부사 송현수(宋玹壽?단종의 장인), 돈녕부판관 권완(權完), 영의정 황보인(皇甫仁), 좌의정 김종서(金宗瑞), 사육신(死六臣) 등 단종과 관련하여 죽음을 당한 32인의 위패를 모신 곳이 충신단(忠臣壇)이며, 안평대군의 아들 우직(友直)과 우량(友諒), 영의정황보인의 아들 황보석(皇甫錫), 황보흠(皇甫欽), 김종서의 아들 승벽(承壁), 승규(承珪)등 충신들의 직계 비존속들 중에서 정란(靖 難)에 의하여 죽음을 당한 사람들 186인의 위패를 모신곳이 조사단(朝士檀)이며, 여인위(女人位), 환관위(宦官位)는 끝까지 단종(端宗)을 따르다가 죽어간 시녀와 환관노복들을 합동으로 봉안한 제단이다. 이렇게 4단으로 구분되어 있으나 총칭 충신단이라고 하며 해마다.
한식절에 단종제향과 함께 제사를 받들어 왔다.
그런데 충신단 제향은 단종제향과 같이 처음부터 봉제한 것은 아니고 후에 충신단이 건립된 후부터라고 생각된다.
단종에 대한 제향은 단종이 승하한지 약 60여년후인 1516년(중종 11년) 우승지(右承旨) 신상(申常)에의하여 행해진 이후 계속되었는데 그 유래를 보면 다음과 같다.
세조3년 (1457년) 단종승하
1) 중종(中宗) 11년(1516년)우승지(右承旨) 신상(申常)
2) 선조(宣祖) 9년(1576년) 가승지(假承旨) 유손(柳損)
3) 선조(宣祖) 14년(1518년) 승지(承旨)이해수(李海壽)
4) 선조(宣祖) 36년(1603년) 우부승지(右副承旨) 정곡(鄭穀)
5) 광해군(光海君) 2년(1610년) 예조참의(禮曹參議) 이지원(李志元)
6) 효종(孝宗) 4년(1653년) 예조참의(禮曹參議) 김좌명(金佐明)
7) 숙종(肅宗) 7년(1681년) 우승지(右承旨) 송창(宋昌)
8) 숙종(肅宗) 17년(1691년) 예조참의(禮曹參議) 홍만조(洪萬朝)
9) 현종(顯宗) 3년(1662년) 예조참의(禮曹參議) 조윤석(趙胤錫)
10) 숙종(肅宗) 4년(1679년) 예조참의(禮曹參議) 민취도(閔就道)
11) 숙종(肅宗) 24년(1698년) 묘호 : 단종(廟號 : 端宗) 능호 : 장릉(陵號 : 莊陵)
※儀典形式(의전형식) : 종묘의식 홀기(笏記)로 진행(303회) 제36회 단종문화제는 2002년 4월 5일부터 7일까지 3일간 장릉과 금강공원, 기타 보조장소에서 한국문예진흥원, 강원도, 영월군, KBS영월방송국, 쌍룡양회 후원, 단종제 위원회 주최로 개최되었는데 주요 행사내용은 다음과 같다.
- 4.5(수) : 충절의 고장 영월특별전, 사진.민화전시, 정순왕후 선발대회, 한시공모전
- 4.6(목) : 영월부사 행차, 단종대왕 제향, 충신제향, 개막식, 충신.시종진혼제
- 4.7(금) : 궁도대회, 학생백일장, 장기대회, 연극공연, 세대화 합콘서트(불꽃놀이)
- 4.8(토) : 씨름대회, 조선시대 무예시범, 왕세자 책봉 관 례, 전통궁중 줄타기, 칡줄행렬
- 4.9(일) : 백일장, 민속경연대회, 마당극 공연, 향토문화 퀴즈 , 칡 줄다리기 등
단종제향 제관은 초헌관에 영월군수, 아헌관에 평창군수, 종헌관에 정선군수가 행하며
충신제향제관은 충신단은 유림대표, 조사단은 위원회대표, 환관위는 교육장, 여인위는 엄씨문중에서 각각 맡아 집행한다
(http://www.ywtour.com/kor/ 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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