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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대한 내 생각을 짧게 적어 보고자 한다.
지금 내가 술을 안마신지 4개월이 되어가고 있다. 그전에는 나를 일컬어 술고래라는 소리를 간혹 듣곤했다. 그 말속에는 내 이미지와 함께 그 간의 삶의 정황이 그대로 녹아 있는 것 같다.
청년일때는 친구 따라서 그냥 마셨고 직장에서는 일에 대한 부담감과 분위기가 좋아서 마셨다. 때로는 까다로운 직장 상사와 동료를 마주하고 한잔술에 원망과 서운함을 담아 마셨다.
직장의 모든 행사장은 물론 직원들의 모임에도 약방의 감초처럼 내가 있었다. 그게 잘하는 것인줄 알았다. 어떤 상사는 술 잘마시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는 편견 아닌 편견을 갔고 있기도 했다.
그런던 내가 40대 중반을 넘기면서 삶에 대한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다. 술 친구는 그냥 술마실때 친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진한 아픔이 가슴속에 저려왔다. 그렇지만 술마시는 오래된 나의 습관은 마치 고쳐지지 않을 것 같은 고질병처럼 느껴졌다.
작년 12월 중순경 속이 쓰리고 장출혈이 있었다. 여기저기 술로 인한 흔적이 내몸속에 있었고 그 일을 계기로 술을 끊기로 결심하고 이 사실을 식구들에게 알렸다.
집사람과 아이들은 시큰둥하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동안 그 약속을 셀수 없을많큼 어기면서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아이들은 몸도 마음도 훌쩍 자라서 아버지의 존재가치가 무의미해져 버렸다. 집사람은 내가 술마시는 날 동안 숱한 아픔과 마음고생으로 대접보다 더 큰 배신의 잔을 날마다 들이켰다.
난 마치 그 상황속에서 가야 할 길을 잃어버린 나그네와 같았다. 정신을 부여잡고 다시 내 삶을 찾기로 결심했다. 이제는 가족을 위해서 남은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곱씹었다.
물론 술마시는 것이 부정적인 것보다 긍적적인 면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나에게는 절제의 모습이 애초에도 없었다. 술이 술을 먹고난 후 심한 정신적인 갈증이 찾아왔다. 그런생활이 많아 질 수록 내 삶은 술이 인생의 주인이 되어 버렸다.
그 고통의 터널에서 내 삶에 대한 희미한 빛이 스며들었다. 그것은 내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속에 다른 삶의 모습이 투영됐다. 술을 안마시면 친구가 없어지고 직장생활에 어려움이 오지 않을까 두려움도 있었다.
그렇지만 생각을 다져먹고 삶의 다양성을 궁구했다. 우리는 여러사람이 모여 수많은 다양성과 개성속에 개인의 행복 뿐만 아니라 직장과 조화를 이룬다. 개인의 가치가 직장의 비젼과 가치를 공유 할 때 삶의 활력을 찾는 것 같다. 여러 생각과 활동이 모여 직장이라는 덩어리를 굴린다.
우리는 이제 각자를 돌아볼뿐더러 다른 사람의 다양한 모습도 인정하고 함께 가고자 하는 성숙함이 필요 한거 같다. 나와 다른다는 이유로 집단적인 체제와 사고속에 일방적인 강요는 조직의 효율성과 사기를 떨어 뜨린다. 그런면에서 우리 직장은 그런 염려가 없어서 다행스럽다.
이즈음 내가 왜 이러한 생각을 올리는가 궁굼 할 것이다. 어느 철학자가 한말이 생각난다 "진실한 친구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성공한 것이다" 어느때보다 그 말이 절실하다. 창피하지만 난 진정한 친구가 없다. 그래서 가족이 그립다. 그 따스함이 간절하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이란 격언이 있다. 아무리 큰 권력도 십년을 넘기지 못하고 아무리 이쁜꽃도 십일을 넘기지 못한다 라는 뜻으로 인생의 무상함과 시간의 빠름을 얘기하는것 같다. 어느 누가 어떤길을 택하여도 그것은 그 사람의 소중한 인생이다. 인생의 참의미와 가치는 그사람이 찾아야 하는 숙제일 뿐이다. 우리모두 후회없는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잘쓰지 못하는 글을 끝까지 읽어 주셔서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