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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산악구조활동 소고
작성자
허길행
등록일
2020-11-14
조회수
1174
내용
산악사고 구조활동의 발전을 위한 소고

나는 작년(2019년) 12월 친구의 초청으로 하와이에 여행을 갔다가, 등산 도중 길을 잃고 헤매다가 하루 밤을 산에서 보내고 헬기로 구조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국내에서 함께 등산을 하던 친구가 실족으로 다리를 다쳐 ‘소방구조대’의 도움을 받아 하산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미국과 한국의 산악 구조활동에 차이 있지 않나 생각되는 점이 있었고, 비교를 통해 혹시 이 글이 우리 산악 구조활동 발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하와이 등산 실종기는 작년에 작성한 것을 그대로 옮긴 것임.)
물론 나라마다 산악문화가 다르고, 사고의 상황이나 구조 여건에 따라 대응방법이 다를 것이며, 이 분야의 문외한인 내가 이러한 글은 쓴다는 것 자체가 전문가에게는 철부지 소리일 수도 있다. 모르고 하는 소리일 수도 있고, 전혀 도움이 안 되며 혼란만 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양해를 구한다.

명봉산 산악 사고
지난 일요일(11월 8일) 동네 산악회에서 원주 문막의 명봉산(해발 599m)을 등산하다가, 친구가 실족하여 발목 바로 위 정강이 뼈가 골절되는 사고가 있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몇 달간 휴식을 하다가 인원을 제한하며 도시락을 준비해 가는 조심스러운 산행이었다.
사고 지점은 명봉산 삼거리에서 600여m를 내려와서 코끼리바위 바로 위의 첫 번째 계단으로 바로 옆에는 절벽을 이루는 멋진 바위가 버티고 있다. 바위 옆으로 난 계단길을 거의 내려 와, 계단 3개정도를 남기고 돌에 걸렸거나 길옆으로 잘못 디딘 모양이다. 나는 조금 앞에서 갔는데, 뒤에서 소리가 나 돌아보니 가파른 비탈을 3∼5m 미끄러져, 나무에 걸려 고통스러워한다. 한쪽 다리가 부러진 모양으로 도저히 움직일 수 없다고 한다. 산우(山友) 한 명과 함께 내려가 어렵게 일으켜 세우려 해도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다며 고통스러워한다. 둘이서 끌어 올리려 해도 도저히 안 된다. 할 수 없이 환자가 포복을 하여 겨우 길로 올라 왔다.
우선 산악회에 사고 소식을 전하고, ‘119 구조대’에 연락을 하여 사고 상황과 위치를 알려 주었다. 구조대에서는 간단한 사고 경위와 위치 및 나의 신상을 간단히 확인하고, ‘휴대전화 바떼리가 충분한가’를 묻는다. ‘충분하다’고 답했으나 혹시 모르니 다른 사람의 전화번호도 알려 달란다. 옆 산우의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문자를 보낼 터이니 문자를 보고 ‘신고하기’를 누르라고 한다. 보내 온 문자를 보니 처음에는 신고하기가 잘 안 보인다. 그러다가 보니 ‘신고하기’가 내 휴대폰에 나타나 누르니 바로 우리가 있는 위치의 지도가 나타난다. 구조본부에서 GPS를 통해 정확한 위치를 확인한 것이다. 곧 구조대가 도착할 것이니 ‘위치를 움직이지 말고 그 곳에서 기다리란다. 물론 움직일 수도 없다.
다행이 환자의 정신을 말짱했고, 사고를 당하면 정신적 충격도 있고 고통도 심했을 텐데 굳굳하게 참아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기다리는 동안 환자의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다. 초겨울의 약간 쌀쌀한 날씨에 큰 바위아래라서 바람도 거세다. 다행이 환자의 배낭에 보온 자켓이 있었고, 다른 동료가 등산 자켓을 내 놔 보은을 할 수 있었으며, 바닥은 그다지 차지 않아 견딜 만 하단다. 나는 간단한 산행이라 생각하고 출발해 등산복에 여유가 없어 도움을 못주어 미안한 생각뿐이었다.
한 40분 정도 지나니 구조대원 5명이 땀을 흘리며 온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했지만, 예상보다 빨랐고, 몹시 반갑다. 대원들은 모두 젊은 청년들로 믿음직스럽다. 간단하게 상황을 물은 후, 익숙한 솜씨로 응급처치를 한다. 올라오자마자 대장인 듯한 한 대원이 위쪽 길을 한참을 올라가 정찰을 하고 오더니 헬기가 내릴만한 곳이 없다고 한다. 환자를 들것에 싣고, 4명이 어깨로 메고 내려온다. 산길은 일부 구간이지만 매우 가파르고 바위틈을 힘겹게 지나야 한다. 젊은 장정들인데도 매우 힘든 모양이다. 땀을 뻘뻘 흘리고 숨을 몰아쉬며, 200∼300m마다 쉰다. 안쓰러워 내가 조금 도와주겠다고 해도 거부하며,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고자하는 태도가 감동을 준다. 그래서 모든 나라에서 소방 구조대원들이 존경을 받는 모양이다.
불행히도 중간에 헬기가 내릴만한 곳이 없다. 들것에 메고 1.5km를 힘겹게 내려오니 진달래길과 만나고, 그 곳에 구조대 차량 2대가 대기하고 있다. 구조활동은 끝나고, 원주의 병원으로 이송만 하면 된다. 다행히 여주에 사는 동료가 승용차를 갖고 와 원주 병원까지 동행한다고 해서, 다른 일행들은 곧바로 귀가했다. 사고가 나고 구조활동이 끝나기까지는 (시간 체크를 안해 정확히는 모르지만) 약 2시간이 소요 되었다. 물론 구조대원들은 이후에도 병원 이송과 사고보고를 해야 마무리 되겠지만.

하와이 등산 실종기
금년 12월 3일부터 12일까지 10일간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대학 산악회 후배의 초청으로 같은 대학산악회의 친구와 함께 즐겁고 신나는 하와이 여행을 다녀왔다. 고맙게도 수의사였던 친구사이인 후배는 마침 하와이 호놀룰루에 별장(second house)을 갖고 있고 승용차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서, 그곳에서 숙식을 하며 저렴한 비용으로 최대한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집에는 포도주와 맥주와 충분한 음식 재로가 준비 되어 있었으며, 비행기를 이용한 1박 2일의 하와이 섬(일명 Big Island)의 여행비용까지 부담해 주어 지금도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다.
그런데 그 즐거운 추억의 하와이 여행에 오점이라면, 평생에 처음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사고를 친 것이다.
원래 우리는 하와이에서 제일 높은 Mauna Kea(해발 13,796피트, 4,205m) 산을 오를 계획이었다. 그래서 9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Mauna Kea로 출발하였다. 그러나 자동차로 약 2시간을 달려간 등산로는 입구가 폐쇄되어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성산(聖山)’이란 이유로 원주민들이 출입을 막고 있으며, 그곳에 위치한 천문대 등도 이전을 요구하며 농성 중이라고 한다. 입구에는 원주민들이 텐트촌을 이루고 있었다. 덕분에(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여유를 갖고 하와이의 명소 관광을 즐길 수 있었으며, 호놀룰루(Ohau 섬)로 돌아올 수 있었다.
10일. 그날은 원래 하와이의 마지막 날이다.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에 일찍 일어나 해변을 걷다가 돌아와 아침을 먹고 늦으막 하게 트레킹을 출발했다. 약 2시간 정도 Manua Falls 근처를 돌고 와서 오후에는 쇼핑을 할 계획이었다. 그래서 가벼운 등산 차림에 쌕(sack)과 스틱, 그리고 약간의 간식만을 갖고 출발했다. 나는 쌕도 없는 채로 갔다.
트레킹은 10시 반 경에 시작 되었다. 가벼운 마음이라 정확한 시간에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입구부터 폐쇄되어 있었다. 철문이 닫혀 있고, ‘위험하니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달려 있었다. 망설이고 있는데, 마침 미국인 젊은이들이 문을 타고 넘어 들어가는 것이다. 나도 용기를 낼 수 밖에....
폭포까지의 길은 완만하고, 주변에 대나무며 아람드리 나무가 무성하게 들어차 있어 기분을 매우 상쾌하게 했다. 계곡에는 물도 많았다. 마치 열대 원시림을 걷는 기분이었다. 폭포에 이르니 장관(壯觀)이었다. 낙하하는 물은 많지 않았으나 약 80m(?) 정도에서 직각을 떨어지는 폭포수는 감탄사를 절로 나오게 했다. 폭포 아래서 사진을 찍고, 간식을 먹고 잠시 즐기다가 트레킹을 즐기기 위해 일어났다.
오른쪽으로 약간 오르막의 트레킹 코스가 있었다. 10여 미터를 가니 오른쪽으로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은 급경사인데다가 사람도 별로 다니지 않는 것 같았다. 입구에는 ‘위험한 곳이니 들어가지 말라’은 경고판이 또 있었다. 위험 경고판이 호기심을 유발한 듯하다. 옛날 등산하던 젊은 시절의 호기(浩氣)도 발동했다. 너무나 좋은 산의 분위기가 이성을 마비시켰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가지 말라면 더 가야지’ 하자 모두 동의하고, 호기롭게 따라 나섰다.
깎아지른 폭포 바로 옆으로 오르는 길이니 이곳 역시 가파르기는 마찬가지 이다. 곧 바로 거의 직각의 바위길이 나타났다. 그런데 마침 나무부리가 엉겨 있어 오르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뿌리가 홀더와 스탠스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직벽을 한참 오르니 또 다른 직각의 폭포가 나왔다. 높이는 약간 낮아 보이나 모양은 아래의 폭포와 유사하게 직각이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며, 어제 못한 Mauna Kea 등산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아래쪽 폭포 위에는 튼튼한 고정 하켄이 박혀 있다. 이곳에서 그 높은 폭포를 엎자일링해 내려 가나보다. 모험심 강한 미국 청년들의 용기를 실감하게 한다.
계곡을 건너가니 또다시 10여m의 바위절벽이 나온다. 이곳에는 고정 자일이 걸려 있다. 그러나 자일이 걸린 곳은 약간 오버행이라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서 옆으로 간신히 오를 수 있었다. 그 다음은 급경사의 연속이었으나 주변에 나무가 많아 나무와 뿌리를 잡고 오를 수 있었다. 물론 몇 번 시도하여 간신히 오를 수 있는 곳도 있었지만. 경사면을 계속 오르니 능선인 리찌(ridge)가 나오고, 정상이 곧 나올 듯 했다. 1시간 반 가량 올랐다. 리찌는 무척 날카로웠으나 주변에 나무와 억새풀(?)이 많아 위험하지는 않았고 길도 뚜렷했다. 그러나 능선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올라 산 정상이 보일 즈음에 보니 정상까지는 매우 멀었고, 옆 계곡과 맞닿은 능선도 아마득하여 오늘 돌아오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았다. 그래서 되돌아오기로 결정했다.
발자국을 더듬어 올라온 길은 되돌아 오다보니 길을 잃었고, 중간에 몇 번을 우왕좌왕하며, 조금 완만해 보이는 곳을 골라 아래로 계속 내려왔다. 경사는 매우 급했고, 바위는 화산재로 형성된 듯 잡기만 해도 푸석 떨어져 나갔다. 한 두 번씩 급경사에서 미끄러졌지만 나무에 걸려 다행스럽게 다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간은 멈추지 않고 가기만 했다. 4시경 상봉이가 911을 부르자고 했으나 외국에서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는 두려움 때문에 그냥 더 내려가자고 했다. 5시가 지나자 희망이 없어졌다. 6시면 어두워지기 시작할 판이다. 저만치 또 다른 폭포가 나무사이로 희미하게 보이지만, 길은 더욱 가파르다. 더 이상 진행할 수도 없는 막다른 상황이다. 할 수 없이 911 비상 전화를 돌렸다. 내 전화는 안 되고, 간신히 안국전의 전화가 연결되었다. 정말 천만 다행이었다. 전화가 유일한 생명줄이었다. 지시에 따라 주변에 나무를 제거하여 하늘에서 보일 수 있도록 하고 기다리란다.
6시경 긴급 헬기가 나타났다. 옆의 골자기를 돌다가 되돌아가기를 두 번, 드디어 우리 있는 쪽으로 나타났다. 나뭇가지를 마구 흔들고, 휴대폰 후레시를 흔들었다. 간신히 우리를 발견한 모양이다. 한상봉이가 계속 전화로 연락을 했다. 구조대를 보낸다고 말하고, 헬기가 돌아갔다. 위치만을 확인 한 것이다. 한참 후 헬기가 다시 나타나 주변을 돌다가 우리 있는 곳으로 왔으나 또다시 되돌아갔다. 우리가 머무르는 곳이 너무 위험한 곳이라 오늘은 구조를 할 수 없고, 내일 6시 반에 구조대를 다시 보낸다고 한다. 열대의 정글에서 하루 밤을 보내야 한다. 옷도 여름용 등산복에다가 준비도 없이. 걱정이다. 춥지 말아야 할 텐데....
주변에 하루를 비박할 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다행히 기댈 수 있는 곳이 있었다. 나는 다른 동료들 보다 한 칸 위에 땅이 갈라진 틈이 있어, 이곳에 엉덩이를 붙이고 하루 밤을 지새울 수 있었다. 문제는 물이었는데, 다행히 주위에 이끼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이 있어, 이것을 페트병에 받아 셋이 교대로 공평하게 마셨다. 그간 정신이 없어 몰랐는데 탈수가 심했던 모양이다. 입술 주위에 흰 거품찌꺼기가 끼고, 목소리마저 잠겨 대화가 힘들었다. 점심은 간식만을 약간 했는데도 배고픔은 없었다. 쌕에 먹을 것이 있었으나 갈증을 우려하여 벅지 못 하고 남겨 두었다. 내일 아침 구조대가 온다는 확신이 있어 두려움도 없었다.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달빛은 밝았고 멀리 호놀룰루의 야경이 휘황찬란하게 비쳤으며, 발아래로는 마을의 불빛과 크리스마스트리가 빛을 발했다. 크리스마스트리는 각양각색이다. 어느 집은 밝고 붉은 빛이 일정한 간격을 번쩍이고, 어떤 집은 두 가지 색으로 된 빛이 각각 5종의 문양으로 바뀌며 비치고 있었다. 지루했지만 동료 간에 이야기가 있었고, 새벽에 약간 추웠지만 다행히 비도 바람도 없어 견딜 만 했다.
상봉이가 물었다. 형님 ‘지금 극한상황은 아니지요?’ 내가 ‘아니다’고 했다. 물론 구조대와 연락이 안 되었다면 극한상황일 수 있다. 그러나 체력도 고갈되지 않았고, 수 시간 후 구조의 희망이 있으니 극한상황은 아닌 것이다. 이러한 대화 자체가 여유로움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두 시간정도 눈을 붙인듯했다. 새벽 3시반경부터는 호놀룰루 상공으로 비행기가 날기 시작한다. 아침의 시작이다. 희망의 시작이다. 그리고 6시경 동쪽하늘이 붉어지기 시작한다.
정확히 6시반. 멀리 헬기가 나타났다. 주위를 한 바퀴 돌고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배낭은 앞쪽으로 안으라는 지시가 왔다. 헬기가 우리의 위쪽에 멈추더니 구조대원이 밧줄을 타고 우리가 있는 약 5m 아래로 내려 왔다. 내가 제일 먼저 미끄러지며 그곳으로 갔다. 구조대원이 나를 밧줄에 묶었다. 엉덩이 받침도 있고 세 줄로 묶여 매우 안정감이 있었다. 곧 헬기는 이륙했고, 나를 마을 공터에 내려놓은 후, 다음 사람을 구조하러 떠났다. 이렇게 3명 모두 안전하게 구조 되었다. 천만 다행이란 말밖에 할 수 없다. 헬기는 3명을 모두 구조한 후, 우리가 머물렀던 곳으로 가서 한참을 살펴본 후 돌아갔다. 보고서 작성 등에 필요한 현장점검을 하는 모양이다.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를 구조한 구조대원과 헬기 조정사가 매우 고마웠다. 구조대원과는 떠나기 전 고맙다고 반갑게 악수와 포옹을 했지만, 헬기 조정사에게는 접근을 할 수가 없어 함께 손만 흔들었다.
구조 현장은 장관이었다. 소방차와 소방차 크기의 구조대차, 지휘차량, 그리고 13명의 대원들과 새벽부터 구경 나온 상당수의 마을 사람들.....
헬기에서 내려 구조대 쪽으로 걸어가자 다친 데는 없는지 물었다. 없다고 하며 두 손을 들고 다가가니 다행이라고 하며, 물이 필요하냐고 하여 한 병을 받아 마셨다. 더 필요하냐고 했으나 필요가 없었다.
구조 후 조사(심문)가 심할 줄 생각했다. 소방당국으로 끌려가서 몇 시간 조사를 받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현장에서 책임자가 이름, 나이, 전화번호를 묻는 것이 끝이었다. 내가 만 74세, 그리고 안국전 73세, 한상봉 71세. 구조대장이 어이가 없어 할 말이 없는 듯 했다. 영어에 능숙한 한상봉에게는 우리가 갔던 길을 간단히 물었다. 그것이 끝이었다. 지휘차는 한상봉을 주차된 곳까지 되려다 주었고, 사진을 함께 찍고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헤어졌다. 혹시 필요할 지도 모른다며, 종이에다가 친필로 ‘사고증명서’를 써 주기도 했다. 내용은 ‘오늘 아침 3명을 구조했는데, 그들이 어제 밤을 산에서 보냈다는 것과 사건 번호 및 구조대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이 증명서가 있으면, 공항에서 우선적으로 비행기를 탑승시켜 주며, 벌금도 면제된다고 한다. 다행히 대한항공에 미리 연락하여 비행기 스케줄을 바꾸어 놓아 필요 없게 되었지만, 그들의 조난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체계적인 구조시스템이 선진국다움을 느끼게 한다. 또한 친절함도 잊을 수 없다.
마을 사람들은 호기심과 궁금한 점이 많은 듯 했다. 동양의 늙은이들이 그 험한 산에서 조난을 당하다니. 몇몇은 취재기자처럼 자세히 물었다. 여기에 답변은 안국전이 주로 했다.
다음날 한상봉의 배웅을 받으며, 하와이의 인상 깊은 추억과 즐거움을 뒤로 하고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 모든 일정이 하루 지연됐을 뿐, 오후에 쇼핑도 하고 정상이다.
이번 구조대의 도움을 받은 하와이 사건은 나의 50여년 산행에 처음 겪은 매우 이례적이고 창피한 사건이다. 계획이 없는 젊은 날의 호기(浩氣)와 무모함이 가져온 위험이다. 앞으로는 계획과 준비가 없는 산행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호기도....
그러나 이번 사건은 평생에 잊지 못할 추억과 아무나 할 수 없는 좋은 경험을 나에게 선사했다.
인류의 무수한 생명을 구한 페니실린과 같은 역사상 많은 위대한 발견과 발명은 실수 때문에 이루어졌다.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므로 서쪽으로 계속 항해를 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는 신념 하나로 모험을 강행하여 신대륙을 유럽에 소개함으로써 산업혁명의 기틀을 마련했다. 모르는 길을 가보지 않고 새로운 도전이 없었다면 위대한 기업은 탄생할 수 없었다. 모험과 도전과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이 없었다면 인류 문명은 발전하지 못 했을 것이다. 우리의 미지를 향한 도전은 위험이 따랐지만, 영원히 잊지 못할 새로운 경험과 추억과 즐거움과 교훈을 선사하였다. 그 출발은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과 친구 간의 믿음이었다.
친구들아 새로움을 향한 호기심과 꿈을 간직한 채 건강하게 긍정적으로 오래 삽시다. 시간이 지날수록 Manua의 추억은 영원한 즐거움이 될 것이다.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열대의 원시림에서 길을 잃어 헤매고, 하루 밤 비박을 하다니.... 진실로 ‘감사하다’. 한상봉 박사. 그리고 안국전.(2019년 12월)

산악 구조활동에 대한 소고
한국과 미국 하와이. 1년 사이에 두 곳에서 산악 구조활동을 목격하고 생각하는 점이 있어 적어 본다.
우선 헬기구조 문제이다. 미국 하와이에서 조난을 당했을 때, 나는 헬기를 타고 편안하게 구조되었다. 조난당한 우리의 위치를 확인한 구조대가 우리의 위치로 예정된 시간에 날아 왔고, 헬기에서 밧줄을 타고 구조대원이 내려와 나를 안전하게 안전벨트로 묶은 후, 포근하게 감싼 자세로 헬기에 매달고 마을의 안전지대에 내려놓았다. 헬기에 대롱대롱 매달렸지만 불안감은 전혀 없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험이 일천하여 그런지 몰라도, 헬기에 밧줄로 매달아 구조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보통 사고지점에 헬기가 착륙하여 조난자를 싣고, 후송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헬기가 착륙할 수 있는 공간이 없으면, 헬기구조가 안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들것을 이용하다보니 시간과 힘이 많이 드는 것 같다.
물론 산악구조가 달라 동일한 방법을 적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명봉산이나 우리나라의 산림은 소나무를 비롯한 키가 큰 나무들이 우거져 있어 밧줄을 이용한 접근이 제약될 수 있다. 반면, 하와이의 경우 산림이 우거져 있지만, 그다지 키가 크지 않은 잡목으로 이루어져 접근이 쉬울 수 있다. 그러나 밧줄을 이용한 헬기 조난구조는 험난한 산악구조의 효율성을 고려해 발전시켜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밧줄을 이용해 짐은 나르는데, 사람은 안될리 없다고 생각된다. 물론 구조 요원에 대한 고도의 훈련도 필요할 것이다.
다음은 현장 조사이다. 하와이의 경우, 구조가 끝난 후 헬기가 다시 현장으로 출동하여 사고현장을 조사하고 돌아왔다. 그들이 무슨 조사를 하고, 조사 결과를 어디에 사용하는지는 모른다. 또한 구조 후 조난자를 통해 사고 경위에 대한 자세한 조사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사고수습을 위한 조치는 신속하게 이루어졌으나 사고 원인이나 현장에 대한 조사는 미흡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내가 모르고 지나간 일 일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사고 현장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통해, 필요하다면 안전시설을 함으로써 동일한 장소에서 사고가 다시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사고와 구조활동에 대한 자료는 이후 산악 구조활동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 산악 구조활동의 발전을 기원하며, 다시 한번 원주 소방 구조대원들께 진정한 노고에 감사 들인다. 젊은 그대들이 있기에 우리는 내일도 안심하고 산을 향할 것이다. 화이팅! (2020년 11월9일 동산 허길행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