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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삼가 아룁니다.
작성자
null
등록일
2014-02-20
조회수
1762
내용

삼가 아룁니다.

  

지난 1월 13일 동해소방서에서 근무하다 순직하신

고인 김남백 동해소방서장의 집사람입니다.

인사가 너무 늦어 죄송하고 죄송합니다.

 

장례 직후 황망히 답례 글을 써서 보내노라 보냈는데

주소를 잘 알지 못하고 명확치 않아서

이중으로 가기도 하고 안 가기도 하고 반송되어 오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동해소방서장으로 장례와 영결식을 영예롭게 잘 치러주신

동해소방서와 강원도 소방본부 직원 여러분들께는

정작 답례 글을 빠뜨리는 결례를 범했습니다.

감사의 답신이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답글을 올리오니 너그러이 이해바라며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시길...

 

너무나 갑작스럽고 황망하여 몸과 맘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허깨비처럼 허위허위 하루하루 버티다보니

어느덧 한 달이 넘어가며 시간은 흘러 흘러 잘만 가고 있습니다.

 

아프면 아프다, 힘들면 힘들다,

한 마디 언질이라도 내비쳤으면 어떻게든 그 무엇이라도 대비하였으련만...

가면 간다고, 나 먼저 가서 미안하다든지, 그동안 살아줘서 고맙다든지...

단, 단 한마디 말이라도 들었으면 믿을 수 있으련만...

아니 말은 고사하고 눈물 가득한 내 눈길 내 목소리 한번만 받아주었어도

이리도 허망하고 참담하지는 않으련만...

 

처음에는 믿기지 않아서, 정말 믿을 수 없어서 소방서를 많이 원망했었습니다.

아침에 웃으며 멀쩡히 출근한 사람이,

다른 곳도 아닌 소방서 본인 집무실에서 의식이 없는 채로 발견했다니

그걸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어찌 그걸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숱한 타인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는 소방서에서

사람뿐 아니라 미물들 목숨까지 구해내는 소방서에서

정작 자신의 목숨은 지키지 못한 어리석고 바보 천치같은 못난 사람이라고

욕도 하고 원망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화도 내고 이건 아니지 싶고...

 

하지만 지금은 감사하고 감사드립니다.

정신없는 저희 유족을 대신하여 세심하게 신경써주시며

손님접대며 안내며 장례식장 영결식장, 즈므 선영, 장지 뒷정리까지

성심성의껏 준비, 진행, 마무리 해주시고

고인 가시는 길 영예롭게 끝까지 잘 보낼 수 있도록 마음에서 우러난 도움주시고

 

그 무엇보다도 소방서 여러분들이 단순히 직장 상사나 동료선후배로서가 아닌

따뜻한 가슴 지닌 한 사람으로, 실력있는 리더로 존경받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내 일처럼 진심으로 아파하고 슬픔을 같이 해 주시어서 정말 감사, 감사드립니다.

 

생전에 가족보다도 집안 친척보다도 직장을 더, 최우선으로 여기며 살았는데

저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직장에 무어 그리 열심이냐고 야속해했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게 아니라 모두가 다 알고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고인이 열과 성을 다해 한평생 몸바쳐 근무한 소방서니까

거기서 생을 마감한 것이 본인에게는 축복이지 싶고

그러기에 고통없이 편안히 갈 수 있었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가족은, 남겨진 가족은 아직 많이 힘이 듭니다.

이승에서 잘 살았으니 좋은 곳으로 갔을 거라 위안하지만,

이제 더는 목소리를 들을 수도,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다는 허허로움.

같이 밥먹고 웃고 이야기하고 걷고 주말 아침 함께 바다가고...

무심히 행하던 평범한 일상들을 이제 더는 함께 할 수 없음이

너무도 가슴시리게 아프고 아픕니다.

 

허나 아무리 슬퍼해도 이미 돌아오지 않는 강을 건넌 사람입니다

이제 눈물을 닦고 힘내서 오롯이 내게 주어진 자식들 거두며 열심히 살겠습니다.

늘 함께 하려 애틋했던 연인으로 주말부부로

자상하고 다정한 두 딸들의 딸바보 아빠로

존재만으로 힘이되고 좋다는 막내 늦둥이 아들의 아빠로

그 누구보다 효성스런 어머니의 아들로

가장 가깝고 귀중한 가족의 연으로 같이 살 수 있어 행복하였고

함께 한 세월만큼 사랑으로 가득한 아름답고 따뜻한 추억이 많아

그 추억 가슴에 품고, 그 힘으로

저희 남은 가족 열심히 열심히 잘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감히 주제넘게 당부 한가지 드리고자 합니다.

요즘 영동지방에 내린 폭설로 수고가 많으실텐데요

암만 힘들어도, 아무리 응급 재난 구조 구급 현장이라 하여도

제발 자신의 건강과 생명은 자신이 꼭 지키시는 소방인이 되시길.

타인의 생명도 물론 소중하지만 가장 소중한 자신의 생명 먼저 꼭 지키시길...

 

다시 한 번, 고인이 마지막 가시는 길 끝까지 함께 해주시고

진실한 도움과 위로, 격려, 마음과 정성 보태주신 소방서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깊이, 감사 감사드립니다.

 

2014. 2. 19.

 

고인 김남백 동해소방서장의 처 원해자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