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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소방서장(김기성)는 지난 11월 13일 금요일 명예119홍보대사 위촉식 및 특별강연의 시간을 가졌다.
이날 명예119홍보대사로 소설가 김별아(대표작'미실')가 위촉되었으며 '문학과 인생'이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였다. 이것으로 인연을 맺은 소설가 김별아는 본인이 맡고 있는 한겨레 칼럼에 우리와의 인연을 글로 표현하여 '소방'이라는 조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만들어 주었다.
한겨레 [세상읽기] 일상의 힘 / 김별아
얼마 전 겨울철 불조심 강조의 달 행사의 일환으로 강릉소방서의 명예소방서장 및 119명예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그런데 이 명예로운 직책을 맡았다는 소식에 나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은 거의 우스워 미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굳이 예술 작품 창작을 위해 불을 지르는 작곡가의 광기를 그린 김동인의 소설 <광염 소나타>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나는 방화범이 더 어울리지 소방관에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 ‘비행 중년’이기 때문이다. 위촉식에 가서까지 이런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유머라고 지껄였더니 점잖은 소방서장님이 성실하게 응대하신다.
“저희는 ‘방화’라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고의성 화재’라고 지칭하지요.”
그랬다. 나는 졸지에 그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깜냥에 버거운 감투를 들쓴 것에 불과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소방관 및 소방관계자들은 목숨을 걸고 화재와 사고에 맞서 싸우는 분들이었다. 소방 활동과 지역 네트워크에 대해 보고 받고, 난생처음 소화기 작동법도 배우고, 4년 전 무려 32시간 동안 동해안 250헥타르의 산림과 수많은 삶터와 낙산사까지 전소시킨 양양 고성 산불의 복구 현황을 듣는 동안 나는 점점 이 화마에 맞서 싸우는 전사들에게 감동 받기 시작했다.
강연이랍시고 좌충우돌하고 갈팡질팡하는 내 인생과 문학에 대해 열없게 고백했을 때, 그분들은 어느 독자나 청중들보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강연이 끝나자 소방관 한분이 다가와 말했다.
“작품의 큰 주제를 ‘사랑’과 ‘죽음’으로 잡고 있다는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저희들은 언제나 생사를 다투는 현장에서 일하는지라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밖에 없거든요.”
어느 교육학자의 말대로, 체험을 넘어서는 지식은 없다. 그들의 깨달음은 책이나 학교가 아니라 일상적인 삶을 통한 것이기에 더욱 진귀하고 소중했다.
인간이 느끼는 육체적인 통증 중에 가장 큰 것이 불로 인해 팔다리의 말단부가 타는 작열통이라고 한다. 그런 극심한 고통을 번연히 알면서도 위험 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는 이들이기에 죽음만큼이나 삶의 순간순간을 의미 있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평생토록 소방관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다 운명을 다한 119구조차가 마침내 폐차될 때에도 구조차는 폐차장으로 가기 전에 소방서의 차고 앞에서 소방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퇴역의 의식을 치른다. 과일 몇 가지와 막걸리를 차린 술상을 받고, 소방관들의 절도 받는다. 그들이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에도 서로를 버리지 않은 ‘동료’들이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고 수장이 교체되면 대부분의 정부기관이나 국립 공공기관들은 그야말로 난리다. 원칙을 내팽개친 채 알아서 기고, 기다 못해 삽질하여 땅속까지 파고들 기세다. 그러다보니 신뢰도는 바닥을 치고, ‘영혼이 없다’는 냉소적이고 부끄러운 소리까지 듣는다. 이런 난국에도 소방조직이 공공기관 신뢰도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의할 만하다. 소방조직이 시민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는 이유는 생활 속을 파고드는 일상의 힘 때문이다. 허황된 약속과 오해의 쳇바퀴가 아닌 가장 절박한 순간 우리의 손을 이끌어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사람다운 사람만이 갖는 ‘영혼’의 힘이다.
그런데 이들조차 2조 1교대(24시간 맞교대)에서 3조 2교대(3교대)로 근무 환경이 바뀌는 것이 최대의 과제라니, 나라 곳간은 삽자루 사는 일 말고는 이토록 열리기 어렵단 말인가? 부디 열악한 근무 환경이 하루바삐 개선되어 아름답고 고마운 분들이 안전하시길 빈다. 아, 그리고 자나 깨나 불조심!
김별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