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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재난관리시스템의 난맥(월간조선 5월호 기고문)
작성자
한성필
등록일
2007-05-01
조회수
1394
내용
속초소방서 박명식 과장님이 월간조선 5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朴明植 강원도 속초소방서 행정과장?소방령
1947년 서울 출생. 서울 보성高 졸업. 1977년 강원도 소방공무원 공채 1기. 강릉?동해?삼척소방서 소방과장?방호구조과장. 강원도 소방본부 예방계장?방호계장?상황실장 역임. 現 속초소방서 행정과장.
「현장보존하라」는 경찰 지시에 인명구조 못 하는 경우까지
---「재난 기본법」에 맞게 소방서장이 재난현장 통제해야 ---
2005년 4월4일 밤 11시53분 속초소방서 119상황실에 적막을 깨는 경보음이 울렸다. 「양양산 기슭에서 화재가 발생해 때마침 불어온 강풍과 함께 삽시간에 번지기 시작했다」는 신고가 접수됐기 때문이다. 속초소방서는 道內(도내) 他(타)소방서에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산림청과 인근 軍부대에 헬기 지원을 요청했다.
날이 밝으면서 산림청 헬기 1대와 軍부대 헬기 2대가 진화작업에 투입됐지만 산불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속초소방서는 산림청에 헬기 추가투입을 요청했으나, 헬기는 산림청 내부의 여러 단계를 거치느라 40~50분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4월5일 오전 10시20분 산림청장은 『산불이 완전 진화됐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밤새 火魔(화마)와 死鬪(사투)를 벌였던 소방대원들은 긴급 동원된 市?郡(시?군) 관계자들에게 잔불 정리를 맡기고, 다른 화재현장으로 이동했다. 헬기도 철수했다. 그러나 오후 들어 바람이 거세지면서 다시 산에 불이 붙었고 千年古刹(천년고찰)인 낙산사까지 불타 버렸다.
결국 밤새도록 火魔와 싸우고 난 후 산림청 발표에 따라 철수했던 소방대원들에게 산불 확산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의하면 각종 재난이 발생했을 때 市?道 긴급구조통제단장은 소방본부장이, 市?郡?區(시?군?구) 긴급구조통제단장은 소방서장이 맡는다고 되어 있다.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각종 재난에 대비해 마련한 「위기관리 매뉴얼」도 바로 이 법 규정을 근거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현실은 법과 동떨어져 있다. 법규정상으로만 통제단장이지, 현실적으로 소방서장은 市?郡?區 공무원들이나 경찰관들을 거의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의 경우, 대외적으로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과 물리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재난 업무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려 드는 경우가 많다.
2002년 10월 중순, 강릉 대관령 舊도로상(아흔아홉 구비)에서 관광버스가 50m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버스가 추락하면서 불이 났다」는 신고를 접수한 후, 우리들은 대형사고임을 직감하고 긴급 출동했다.
운전자는 『38명이 탑승했다』고 하는데, 1명의 행방이 묘연했다. 중형 크레인을 불러서 급히 차량을 들도록 지시했다. 크레인 운전자는 버스를 들지 않으려고 했다. 그는 『경찰이 들지 말라고 했다』며 버텼다. 경찰서 교통계장이 『현장보존이 중요하다』며 그런 지시를 내린 것이었다. 인명구조가 우선인 재난현장에서 소방관의 지시가 무시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지난 1월20일 오후 8시54분 강원도 일원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이 발생한 후, 국민들이 지진발생 사실을 신고하기 위해 114로 문의했으나, 30여 명의 안내원 중 재난신고 전화번호를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몇몇 안내원들은 『혹시 119가 재난신고를 받아 주는 곳 아닌가요?』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114 안내에서도 모르는 재난신고 번호를 일반 국민들이 알 리 만무하다.
소방방재청 홈페이지의 「국민안전」 메뉴를 보자. 재난안전 등의 신고는 (02) 2100-4119, 전국적인 재난재해 신고는 국번 없이 1588-3650, 화재?구조?구급신고는 119로 되어 있다.
그뿐이 아니다. 각 市?道에서는 별도의 재난관리 신고전화를 운영하고 있다 (부산 051-888-4119, 제주 080-001-3100 등). 이래서야 체계적인 재난신고와 대처가 가능할까?
최근 소방방재청에서는 전국적으로 자율방재단을 모집하고 있다. 현재 각 市?郡에 수개隊(대)씩(1개대 30~60명) 전국적으로 9만여 명의 의용소방대가 구성되어 있다. 소방서장이 임명하는 의용소방대원들은 출동수당과 제복 등을 제공받으며, 화재?재난이 발생했을 때 동원된다. 이처럼 의용소방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무가 거의 유사한 자율방재단을 새로이 모집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몇 년 전 미국에서 소방관 4명이 순직했을 때,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運柩(운구)행렬을 따라 4km를 걸어가며 애도했다고 한다.
수년 전 서울 홍제동 화재로 소방관 6명이 순직했을 때, 대통령은 「대통령이 빈소를 찾지 않는다」는 비판 여론이 빗발친 후인 다음날 저녁에서야 잠깐 빈소에 들렀다. 대통령은 유가족 앞에서 소방관에 대한 처우개선과 인력증원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國費(국비)도 아닌 地方費(지방비)로 소방관들 앞으로 10만원씩 떡값을 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강원도의 경우 당시 道지사가 빠듯한 예산 사정에도 불구하고 『차용을 해서라도 고생하는 소방관들에게 떡값을 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他道에서는 道지사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소방관들이 떡값을 지급받지 못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인력증원 약속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규 소방관 대신 의무소방대원이 일부 충원되었으나, 그나마도 얼마 후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현장 중심의 재난관리 행정이 되어야
재난관리 행정의 난맥상과 현장 소방대원들에 대한 홀대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재난관리 현장의 목소리는 무시한 채, 일반행정직 공무원들에 의한 탁상행정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 대형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재난관리 기구 설치의 필요성이 제기되곤 했다. 그 결과 2004년 6월 행정자치부의 外廳(외청)으로 소방방재청이 신설됐다.
재난관리 단계 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대응」이다. 그런데 소방방재청의 인력 구성을 보면 300여 명 가운데 소방직은 약 20%인 60여 명에 불과하다.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소방본부장과 소방서장의 현장지휘권이 완전하게 확보되고, 대응조직이 재난관리 행정의 주축을 이루어야 한다. 이미 서울시 등 여러 市?道에서는 민방위 및 防災(방재)업무를 소방업무와 완전 또는 부분 통합해 운영하고 있다.
나는 금년 연말 30여 년간의 소방관 생활을 마감한다. 우리나라 재난관리가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재편되어,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더 건질 수 있었으면 하는 충정에서 이 글을 月刊朝鮮에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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