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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9 구조대 덕에 무사히 산행을 마쳤습니다.
작성자
김미경
등록일
2010-06-23
조회수
1943
내용

지난 일요일... 남편이 1989년에 갔던 백운산 능선 + 덕골계곡 코스로 산행을 가자고 했다. 그 코스는 남편만 완주를 했고 산행 시간만 4시간 정도가 걸렸다고 했다. 나는 12년 후에 덕골계곡 중간쯤만 놀이삼아 갔다 왔었는데.. 그 계곡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다시 가고 싶었던 코스였다. 전날인 토요일은 우리 지구 성가대 합창제가 있던 날이다. 행사는 거의 11시 다 되어 끝났고, 4시 30분부터 계속 연습을 해서 피곤해서 몸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워낙 가고 싶었던 코스라.. 남편에게는 별 문제없다고 말하고.. 딸까지 동반하고 도시락을 싸들고 나섰다.  

가다가 점심도 먹고 느렁텅도 피면서.. 광덕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한 시간이 2시 30분... 늦었다 싶었지만, 예전에 남편이 갔던 아는 길이고, 광덕고개에서 백운산까지는 능선길이라서 한 5시간 정도면 충분히 산행이 끝나겠지.. 요새는 8시 넘어서도 환하니까... 하고 별 걱정 없이 산행을 시작했다. 딸은 다리 힘이 축구선수 같은 장사라서 마구마구 올라가는데.. 남편도 초반.. 숨찬 곳을 지나고 나니 날듯이 휙휙 가는데... 나는 이상하게 왼쪽 옆구리가 쿡쿡 쑤시면서 왼발을 빨리 떼기 힘들어 자꾸 쳐졌다. 나 때문에 가다가 기다리고.. 기다리고 하면서 시간이 자꾸 지체되었다. 

 

백운산 정상을 지나 4시 50분이 돼서야 삼각봉이란 곳에 도착했다. 한 20분가량 지체된 것 같았다. 남편이 지도를 갖고 와야 하는데 미처 갖고 오지 못했다고 하면서 한번 점검한다고 119 구조대에 덕골계곡으로 빠지는 코스를 물어봤다. 구조대는 잘 모르는지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전화를 기다리면서 계곡에서 먹기로 한 저녁을 먹어치웠다. 그래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 시간을 더 지체할 수가 없어 남편이 도마치봉을 지나야 계곡으로 빠지는 길이 있을 것이라고 해서 도마치봉을 향하여 가고 있는데 구조대에서 전화가 왔다. 도마치봉을 지나 도마치고개 가기 전 왼편에 덕골계곡으로 빠지는 길이 있다고 했다.

 

 

사진 018.jpg
아니..도마치봉에까지 삽이? 누가 저 험악한 삽질을?

 

도마치봉에 도착한 시간은 6시경... 이제 도마치고개만 찾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바로 능선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한 30분 지났는데 도마치고개가 아니라 도마봉이 나왔다. 도마봉에는 세 개의 길이 있었는데 우리가 온 길, 국망봉 가는 길, 그리고 두 길에 수직방향으로 길이 하나 있었는데 그 길은 아무 표시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도마치고개 표시는 우리가 온 그 길로 되돌아가야 하는 방향으로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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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봉에서 바라본 모습들. 참 아름답습니다. 이 사진 찍을 때만 해도 여유가 있었지요.

 

 

그래서 다시 119에 전화를 했다. 119는 도마봉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자꾸 도마봉에서 도마치고개를 찾으라는 말만 반복했다. 우리는 ‘아.. 우리가 급하게 도마치봉에서 도마봉으로 오면서 도마치고개를 지나쳤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온 길로 다시 돌아가려다가 아무래도  도로와 연결된다는 큰 고개를 놓친다는 것이 이상해서 남편이 도마봉 정상에 아무 표시가 없는 능선 길을 한 번 갔다 온다고 했다. 한참을 기다리니... 남편이 돌아왔는데... 길은 있긴 있는데 한 500m 가도록 어떤 표시도 없다고 했다. 남편을 기다리면서 도마봉 정상에서 아래로 길이 하나 왼쪽으로 나있는 것을 보고 그 길로 가보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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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030.jpg

남편을 기다리면서 찍은 도마봉 아래의 야생화들

 

하지만 그 길은 다시 도마치봉으로 올라가는 샛길이었다. 도마치봉에 거의 다 가도록 아무리 꼼꼼히 살펴봐도 고개 비슷한 것이 나오지 않았다. 나도 힘이 빠졌지만.. 남편도 힘이 빠졌는지 좀 쉬면서 광덕고개로 돌아갈지.. 도마치고개를 찾을 지 생각 좀 해보자고 했다. 딸은 힘이 안 빠졌는지.. 화가 조금 난 목소리로 119에 전화를 해서 도마치고개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119에서는 지금 막 도마봉 지도를 찾았다고 했다. 도마봉에 있는 표시판이 잘못된 것이므로.. 표시판이 없는 수직으로 된 길을 따라가면 도마치고개가 나올 것이라고 하면서 일단은 도마봉에 도착하면 전화를 달라고 했다.

 다시 도마봉에 도착하니 8시가 넘었다. 그렇지 않아도 늦었는데.. 귀중한 1시간 30분을 왔다 갔다 하면서 다 소비한 것이다. 우리는 덕골계곡으로 빠지기는 늦었다고 판단했다. 도마치고개에 도착하면 국도가 나오니까 교통편을 이용하여 주차된 곳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우리보다 덜 화가 난 딸을 시켜 다시 119에 전화를 했다. 직원은 이제 확실히 알았다고 하면서.. 표시가 없는 길로 가면 될 것 같다고 했다. 따지기 좋아하는 딸이 “아니. 지금 8시가 넘었는데 ‘될 것 같다’고 하시면 어떻게 해요? 이제 길 잘못 들면 산에서 밤 새워야 하는데.. ”라고 물었다. 119에서는 ‘그럼 저희가 출동해야지요.’라고 했다고 하며 ‘길 잊어 먹어도 우리 데리러 온다 했으니까 걱정 말고 빨리 가자’고 했다.

 8시가 넘어가니.. 아직 어둑어둑해지지는 않았지만... 바람도 스륵스륵 불고.. 빗방울도 한 두 방울 떨어질라 하는 것 같았다. 산의 밤은 낮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한 나는 우비도 우산도 없는데 비가 오면 큰일이라고 생각을 했다. 위기 상황이라고 생각해서 아드레날린이 분비가 됐는지.. 옆구리가 쿡쿡 쑤셔 왼발을 빨리 떼어놓기 힘들던 것도 전혀 느낄 수가 없어 나도 빨리 발을 놀릴 수가 있었다. 그렇게 700m를 갔더니 드디어 도마치고개라는 표시판이 나왔다. 그 표시판을 지나자마자 헬기장 표시가 있었고... 덕골계곡 입구도 나왔다. 119 구조대에서는 큰일이 났다고 생각했는지 10분마다 한번 씩 전화가 왔는데 도마치고개에 도착하는 대로 전화를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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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8시 30분이 넘어가니..인적이 끊어진 산속은 좀 무섭습니다. 

 날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래도 아직은 랜턴 없이 걸어갈 만 했다. 비상용으로 준비해간 헤드랜턴 2개는 배터리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므로... 걸어갈 수 있을 때까지 걸어가자고 했다. 야간산행은 위험만 없다면 가장 아름다운 산행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와중에도 사진도 한방 찍었다. 조심조심 한 40분 이상 가다보니 뭔가 허옇고 넓은 둔덕 같은 곳이 보였고, 멀리 도로가 보였다. 우리는 ‘이제 다 왔구나.. 이제 살았다’고 하면서.. 좀 느긋해졌다.

  그 허연 둔덕을 향해 남편이 앞장서서 가다가 갑자기 “스톱”이라고 말하면서 휘청하고 섰다. 우리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외쳤다. 길이 끊어지고 낭떠러지가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제야 랜턴을 꺼내 주변을 살펴보았다. 길은 보이지 않았고 주변이 다 낭떠러지라서 내려갈 수가 없었다. 느낌으로는 오른편으로 길이 나 있을 것 같은데... 너무 어둡고 수풀이 우거져 내려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119에 전화를 했더니 그 지형을 아는지 출동하겠다고 했다. 조금 기다리니 멀리서 119 구조대가 오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랜턴을 비춰 우리 위치를 알렸다. 119 구조단원이 오던 길로 약 30m 올라가면 왼편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고 해서 우리가 찾아보겠다고 했다. 30m를 올라가면서 길을 샅샅이 보았는데.. 찾지 못했다. 한 100m 지나니 왼편에 길 비슷한 것이 나왔고.. 한 30m 더 올라가니 지난 길보다 더 길다운 길이 보였다. 우리는 그리로 내려갔다. 길은 경사가 심했고.. 계곡으로 향하는 길인지 물이 흘러 미끌미끌해서 앉아서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위험했다. 심마니들만 다니는 길 같았다. 거의 기어서 내려가고 있는데 119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우리가 걱정이 되어 대원 둘이 우리를 찾으러 올라갔는데... 아까 랜턴 비추던 곳으로 다시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는 다시 박박 기어 올라갔다. 드디어 119 대원들과 만나 하산을 하는데.. 우리가 갔던 길과 비슷한 험한 길이었다. 약초 캐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라고 했다. 다 내려가고 나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구조대원 한분이 얼른 얼음이 있는 시원한 물을 주셨다. 우리가 속이 엄청 탄 줄 미리 예상을 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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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릴 구조 후 인적사항을 확인하시는 고마운 구조대원

 

119 응급차는 두 번째로 타봤는데.. 미국에서 아들이 개에게 물렸을 때 한번 타봤고.. 그리고 이번이다. 그런데 이번은 좀 창피했다. 젊어서 갔던 기억만으로 지도도 없이.. 늦게 출발한 우리 잘못이 크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교만해서 119 구조대의 신세를 지게 되었다. 오랜만에 딸과 함께 즐겁게 하려던 산행을 망쳐버렸다. 큰 교훈이 되었다.

 

포천군도 잘못이 있다. 표시판을 완전 잘못 해놓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도마봉에 도착해서 자세히 보니 누군가가 표시는 찢어버렸고, 아래 사진과 같이 기역자 모양으로 그려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같이 고생한 사람이 있었나 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포천시에서 만들어 놓은 나무자체의 화살표 방향을 믿지.. 볼펜으로 그려놓은 표시는 무시하고 지나칠 것이다. 그 표시판은 도마치고개 글자에 도마치봉이라고 표시가 되어야 하고.. 도마치고개 표시는 일자표시판에 수직으로 따로 표시되어 있어야 했다.

 표시판.jpg

이 사진은 2-3년 전에 누군가 찍은 사진입니다. 그 당시에도 저렇게 볼펜으로 화살표 방향을 그려놓았네요.

지금은 도마치고개 옆의 하얀 화살표의 비닐이 아예 뜯겨져 있었습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포천시의 방향판을 믿고 우리처럼 나무판 방향대로 갔을 겁니다.  

 

  한 가지 포천군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능선을 타고 도마치고개를 향하여 가다가 위험한 절개지가 어떤 안전장치도 없이 바로 턱하니 나온다는 것이다. 잘못하면 이것이 능선 길로 연결된 것인 줄 알고 그냥 걸어갈 수 있다는 거다. 남편이 고꾸라질 뻔 했던 것처럼 밤이면 더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 허연 둔덕에 가는 길을 어느 정도 막아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우리가 내려왔던 길이 하도 험해서 검색을 해보니 로프를 타고 절개지를 내려오는 사진이 있을 정도로 도마치고개에서 내려가는 길을 찾는 것이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이 길도 쉽게 찾아 내려갈 수 있도록 정비를 해야 한다고 본다.

 절개지 1.jpg

누군가 찍은 도마치고개 절개지 사진. 능선하고 연결된 저 꼭대기에 안전망이 없습니다. 남편이 떨어질 뻔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산길을 찾지 못해 절개지 옆의 배수로를 따라 로프를 타고 내려오던만요. 

 

 하여간 죽을 뻔한 산행을 마치고.. 다시 한 번 깨달은 것은 쉬운 산도 얕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도와 나침반 필수, 배터리 점검 완료된 헤드렌턴도 필수, 비상식량도 필수, 적어도 12시 이전에는 산행을 시작할 것.. 이런 기초 산행지식을 다시 한 번 점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젠 우리 나이도 생각하며 산행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철저히 들었다. 55세 이상은 고령자이고 50세에서 55세 사이는 준고령자라고 해서... ‘남편과 내가 준고령자라고? 너무하다 너무해.. 나라에서 이런 법률도 안고치고 뭐해? 난 아직도 팔팔한데..’ 라고 생각했었는데.. 20대 펄펄 날던 시절의 산행시간은 이젠 더 이상 우리 시간이 아닌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생명을 구해준 세 분의 119 구조대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춘천소방서에서 나오셨다는데... 그 중 한분은 비번이신데도.. 우리 구조 때문에 다시 오신 것 같았다. 오후 4시 30분부터 우리의 전담상담원이 되어주시고... 우리 차가 주차된 곳까지 데려다 주신 시각이 10시가 넘었으니 5시간 30분의 풀코스서비스를 친절하게 받았다. 도마봉 표시판이 잘못되어 좀 신경질적으로 말씀도 했었는데... 그분들이 그걸 알았겠나? 그분들도 황당했을 텐데.. 차근차근 일러주시고.. 계속 전화해주셔서 무사히 산행을 마치지 않았나 싶다. 칭찬해주고 싶고 동네방네 떠들어주고 싶은 고마운 분들이다.

 2010년 6월 20일 밤 9시 넘어 도마치고개로 세가족을 구조하러 오신 춘천소방서 소속 119구조대원 세 분...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겁니다.

  * 다음 아고라 이야기 감동 코너에 올렸더니.. 댓글 중 119 구조대원들의 선행을 널리널리 알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어 이곳에도 올립니다. 

* 아고라 글 주소 :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S101&articleId=36605